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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유물과 유적을 남기고,

유물과 유적은 역사를 설명한다.

소속: 황산초등학교, 이름: 조영신

Ⅰ. 일본속의 한민족사 역사탐방을 가기까지

1. 역사탐방의 신청

우연히 업무포털 공람에서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이란 연

수 공문을 보게 되었고 연수 내용이 궁금하여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니 지난

1987년부터 2015년까지 36회가 진행되었고, 무려 1만7000여명이 넘는 교사와 일반

인이 이 연수에 참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학년 2학기 사회과에서 우리 역

사를 가르치기 위해 나름 연수도 받고 책도 읽고 공부를 하는 차였기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지만, 12월 학기중에 실시하는 것이라 조금은 염려스러운

마음에 교장, 교감, 연구 선생님께 연수내용을 설명드리고 참여여부에 대해 상의를

하였다. 제 염려와 달리 세분 선생님께서는 선정만 되면 너무 좋은 기회라고 말씀

하시며 신청할 것을 독려하여 주셨고, 부랴부랴 연수 사전, 사후 계획을 세워 교육

청에 제출하였다.

2. 역사탐방 사전 준비

11월 6일 손꼽아 기다리던 선정자 명단을 통보받고 너무 기뻤다. 5박 6일동안의

역사탐방과 더불어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일본이란 나라를 직접 접하게 된다니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이 더 컸다. 학교와 우리반 수업에 차질이 없도록 업무와 결보

강 관련 처리를 하면서 틈틈히 한국사관련 책도 읽고 한국사 원격연수도 수강하였

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우리의 어떤 문화유산이 일본 속에 전해졌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개정하면서 여러 역사적 왜곡을 하고 있

다고 언론을 통해 들었는데 우리 역사를 바로알아야 지적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

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역사까지 공부하기는 시간이 없어 조선일보로부터

송부 받은 답사지역 안내 소책자만 열심히 읽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드디어 300

명의 전국 초,중,고 선생님이 함께하는 역사탐방의 날이 되었고, 한국사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좋아하는 큰아들의 “우리 백제의 칠지도를 선물로 가져오세요”라는 농

담반 진담반의 배웅을 받으며, 아침일찍 전북팀 선생님들과 부산으로 향했다.

Ⅱ. 5박 6일간의 ‘일본속의 한민족사 역사탐방’

1. 첫째날-12월 13일(일) 부산국제여객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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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강연(부산국제여객터미널) 전북팀 선생님들(뉴카멜리아호)

일본으로 출국전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5층 강당에서 오리엔테이션과 학술강연이

있었다. ‘일본 문화답사의 여정’을 주제로 정영호 교수님께, ‘조선통신사는 왜 일본에

갔는가’를 주제로 손승철 교수님께, ‘일본열도의 국가형성과 한반도’를 주제로 이재

석 교수님께 차례대로 강의를 들었다. 300명이 넘는 많은 교사들과 주최, 후원하는

분들과 더불어 강의를 듣다보니 이번 탐방연수에 관해 좀 더 가닥이 잡히고 ‘조선

통신사의 발자취를 따라서’라는 연수 주제도 좀 더 쉽게 이해가 되었다.

저녁식사후 출국심사를 마치고 일본으로 향하는 카멜리아호에 몸을 실으며, 5박6

일 여정동안 건강하고 알찬 탐방이 되기를, 학교와 가정에도 별일이 없기를 기도하

였다. 함께 가는 선생님들이 전국방방곡곡, 20~50대 초,중고 선생님들로 구성되다보

니 첫날부터 많이 어색하고 낯설었기도 하였지만, 이것도 새로운 경험과 도전으로

삼고 싶었다.(그래도 전북팀은 탐방일 전에 사전협의회와 밴드구성으로 서로 얼굴도

익히고 말도 트고 하여 연수기간 내내 많은 의지가 되었다.^^)

2. 둘째날-12월 14일(월) 다마나, 사가, 가라쓰

배에서 조식후 7시30분에 하카타항에 하선후 입국수속을 마치고 드디어 일본 땅을

밟았다. 제일 먼저 반겨준 이는 내가 탑승할 8호차 버스기사님. “어서오세요” 라는

정다운 우리말 인사와 함께 캐리어를 직접 다 실어주시고 이후로도 도착지마다 항

상 먼저 내려 “잘다녀오세요.”라고 인사하시는 아주 친절하신 기사님이었다.

첫번째 답사한 곳은 후쿠오카에서 구마모토로 가는 길목에 있는 후나야마 고분이

었다. 전장 62m 크기의 전방후원분 고분으로 규모가 크고 집 모양의 석관이 나왔으

며 뒤늦게 밝혀진 이 고분의 출토 유물이 모두 92건인데 청동거울, 칼, 금동제 관

모, 금동제 관, 금동제 신발 등이다. 청동거울은 우리나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

과 비슷하고 금귀고리는 가야지역에서 출토된 것들과 똑같으며 금동신발, 금동관도

우리 백제 유물하고 매우 흡사한 걸로 봐서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갔거나, 열도로

이주한 개척자들이 만들었을 거라는 점을 교수님 사전설명과 박물관 관람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무시우동(찜우동)을 점심으로 맛있게 먹고 두번째 답사지역인 요시노가리(사가)로

이동했다. 요시노가리는 야요이시대 최대의 환호 취락과 독널무덤 유적이라고 한하

며 기원후 3세기경의 야요이시대 후반부 마을 모습을 복원해놓은 것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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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제관과 금동제신발 복원모형 나고야성터 복원모형

역시 이곳에서도 한국계의 청동기와 문무토기가 나왔고 우리나라의 세형동감과 매

우 유사한 청동검이 발굴돼 한반도의 청동기 농경문화가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세번째 답사한 곳은 규슈 사가현 가라쓰시에 있는 나고야성터였다. 이곳은 도요토

미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조선침략기지였으며 한반도와 일본의

오랜 교류를 단절시켰던 우리에겐 너무나도 불행한 역사의 무대였다. 130여곳의 영

주들이 집결해 진영을 구축하고 30만여명의 군사가 배치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겠지만 도요토미 사망 후 철군 이후 허물어버려 일부성벽과 터만 남아있

으니 웅장함보다는 옅게 뿌리는 이슬비와 해거름덕분에 을쓰년스럽기만 하였다. 그

러나 탐방단을 위해 늦게까지 나고야성 박물관 관람을 허락해주신 관계자들 덕분에

모형으로나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답사를 끝내고 가라쓰호텔 도착해 트윈

룸을 배정받고 일본전통화정식으로 석식 후 편안한 잠자리에서 여독을 풀고 대구에

서 온 동갑내기친구와 룸메이트가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로 둘째날을 마감하였다.

3. 셋째날-12월 15일(화) 아리타, 다자이후, 시모노세키

보슬비를 맞으며 도착한 곳은 아리타현의 이삼평 기념비와 도잔신사가 있는 이삼

평 도예지였다. 이삼평은 조선 출신 도공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 아리타도기

의 도조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직계 자손이 도자기 제작 활동을 하며 14대까지 이

어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감사하게도 이삼평의 14대손을 만나 직접 인사를 하고

얼굴을 뵐 수 있었다. 이삼평은 충남 공주 출신으로 사가현의 영주가 왜란후 철수

할 때 일본으로 데리고 온 도공중 한사람으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백자’를 만들었다

고 한다. 아리타 도기의 생산과 발전에 이삼평을 비롯한 조선 출신 도공들이 큰 역

할을 했고 이삼평이 가마를 연 300주년을 맞아 비를 세우고 지금도 매년 5월엔 도

조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신사를 처음본 내게도 갖가지 자기로 된 신사의 모습은

참 신기했고, 고요함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리타마을이 우리의 농촌 풍경처

럼 참 친근하고 편안해보였다.

두 번째 탐방지는 다자이후였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하자 백제부흥운동을

돕고자 오사카에서 출발한 사이메이 일왕은 현지에서 급사하고 황태자가 다시 5천

군사를 백제에 파견 연합작전을 펼치던 중 백촌강(동진강 하구)에서 궤멸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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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잔신사(아리타) 다자이후

아카마신궁 청일강화기념관

패전한 일본수군과 백제지배층이 돌아온 후 텐진일왕은 신라가 쳐들어올까봐 백제

식 산성과 토성(서울 풍납토성과 같은 방식. 울 친정동네ㅋ)을 만들어 대비했고 지

금은 다자이후터에 정청 자리를 나타내는 초석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리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다자이후를 둘러싼 가을산의 정취는 탐방단에게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이어서 세 번째 탐방지는 아카마신궁과 청일강화기념관이었다. 조선통신사 숙소로

이용된 아카마신궁은 세토내해의 입구인 시모노세키에 있었다. 일본의 수에즈라고

불리는 시모노세키는 조선통신사에게도 교통의 요지이자 군사적 요충지로 여겨졌던

곳이고 한국과 교류하는 중요한 창구였으나 슬프게도 일제강점기하 강제징용도 대

부분 이 길을 따라 이뤄졌다고 한다. 그리고 아카마신궁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조선통신사 관련 DVD를 보았는데 그 규모의 웅장함이 실로 대단하였다. 통신사의

배가 간몬해협을 들어서면 시모노세키에선 100척의 안내선이 마중을 하고 숙소였던

아미타지(후에 아카마 신궁으로 바뀜)에선 성대한 연회가 베풀어졌다고 한다. 아카

마 신궁은 1185년에 건립되었는데, 8살 어린나이로 죽은 안토쿠 일왕을 모신 신궁

이었고 왕의 신궁이라 황금국화문양을 볼 수 있었다. 아카마신궁옆으로는 청일전쟁

이후 시모노세키 강화조약을 기념하는 청일강화기념관이 있었다. 기념관 안에 강화

회의 공간을 재현해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 조약으로 인해 일본의 조선에 대

한 정치적,군사적,경제적 지배권이 확립되었다고 하니 참 화도 나고 속도 상하였다.

이제 시모노세키를 떠나 메이몬훼리호(CITY LINE)에 승선하여 오사카로 12시간을

이동하는 여정이 남아있었다. 운항한지 2주 갓 넘은 새 배여서인지 깨끗하고 편의

시설이 잘 되어있어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다음날 탐방을 준비할 수 있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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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넷째날-12월 16일(수) 나라, 아스카, 오사카

8시 30분에 오사카항에서 하선을 하여 향한 곳은 세계 최대의 목조 건축물인 도다

이지(동대사)였다.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지여서인지 외국인들도 많이 눈에 띄고 사

슴들이 자유롭게 노다니며(신들의 교통수단이라고 함) 사람들이 많이 북적이는 절

이었다. 도다이지 안에는 높이 16m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청동대불이 있었다.

정말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불상이었다. 이 도다이지와 대불은 신흥국가로 출발했

으나 호족들의 투쟁과 반란, 흉년과 질병으로 위기에 처한 일본이 민심을 수습하고

왕실의 존엄성도 높이며 중앙집권체제의 강화, 이데올로기 통일과 더불어 적대관계

였던 신라에게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쇼무일왕에 의해 745년 조성되기 시작한 것이

다. 752년 완성후 신라는 7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했고 발해도 사신을

파견했다고 한다. 이런 웅장한 도다이지와 대불 주조의 발원, 설계와 제작을 지휘한

사람이 백제계 후손이 양변스님이라고 하였다. 이를 감사하기 위해 가라쿠니(원래는

韓國)신사도 지어주었고. 그런데 도다이지와 대불의 규모에 비해 가라쿠니 신사는

규모도 작고 조금은 볼품없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대불전 뒤편 강당 서편에

일본황실의 유물을 모은 쇼소인(정창원)이 있다고 하는데 한국,중국,인도의 고대유

물을 포함해 소장품만 9천여점에 달한다고 한다. 그 가운데 신라금,신라먹 등 신라

왕실에서 시주한 물화가 다수 포함되어있고 신라 농촌사회 구조와 토지제도를 연구

하는 귀중한 자료인 ‘신라장적’도 있다는데, 공개를 하지 않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벤또로 점심을 먹고 도착한 두 번째 탐방지는 삼국 고대문화의 종합판이라 불리는

호류지(법륭사)였다. 호류지는 아스카 문화의 중심지이자 세계 최고(古)의 목조건축

물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중국과 한반도의 불교 건축과 예술이

일본으로 건나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아시아 미술의 보고’라고 불린다고

도 한다. 쇼토쿠 태자와 스이코 일왕이 요메이 일왕의 병이 낫기를 발원하여 607년

에 완성했다는데, 예전학창시절 사회시간에 배운 담징이 그렸다는 금당벽화(모사품)

는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배운 것과 달리 고구려 담징이 그린 것이 아니라,

그렸지 않았을까가 더 정확하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조금 놀라기도 하였다. 하지만

고구려계 회화의 영향력이 백제계 화풍을 누르고 일본을 지배했음을 보여주는 것은

맞을 것이다. 또한 인상적이었던 전시물은 대보장전특별실에 있었던 2m 넘는 크기

의 목조백제관음상이었다. 얼굴에 품은 온화한 ‘백제의 미소’와 부드러운 얼굴선, 유

연한 자세는 이 관음상에 왜 백제라는 명칭이 붙였는지 이해가 되게 하였다.

세 번째 탐방지는 아스카에 있는 이시부타이와 아스카테라였다. 오가는 길이 좁아

버스가 4대씩 나눠 각각을 번갈아 돌아봤다. 우리 8호차는 백제계실력자 소가노우

마코의 무덤이라는 설이 유력한 이시부타이 고분을 먼저 보았다. 7세기 초에 축조

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분은 봉분이 다 벗겨져 현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30여개의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부 돌만 해도 무게가 64톤에 이르

고 총 중량이 2300톤이라 하니 그 규모가 대단하고 쇼토쿠 태자와 열도의 정치를

좌지우지했던 소가노우마코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백제 왕흥사를 모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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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이지 청동대불(나라) 아스카테라(아스카)

이시부타이(아스카) 호류지 5층탑(나라)

했다는 아스카테라(비조사)를 방문하였다. 아스카테라는 아스카(飛鳥)시대 최초의

불사로 588년 백제로부터 부처의 사리를 헌납받은 소가노우마코에 의해 596년 아스

카지방에 건설된 절이며 본당의 금동불 석가여래상(아스카대불)은 일본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상이라고 하였다. 신기한 것은 일본 교수가 백제의 왕흥사 유적을

확인한 뒤 같은 계통의 기술자가 두 절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는 것이다. 왕

흥사는 577년2월에 창건했고 아스카테라는 577년 11월 백제왕이 일본에 기술자를

보내, 588년 부처의 사리를 봉납한 후 착공해 596년 불탑을 완성했다고 하니 아스

카테라는 백제 왕흥사를 본 떠 지을 가능성이 높다는 교수님 말씀이 사실인 것 같

았다. 우리는 작은 규모의 본당만을 둘러보고 아스카를 떠나 다시 오사카로 돌아왔

다. 저녁으로 Universal Studio Japan 바로 앞에서 초밥우동세트를 먹고 리가로열호

텔에서 넷째날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5. 다섯째날-12월 17일(목) 교토, 오사카

다섯째날의 첫 번째 탐방지는 고류지(광륭사)였다. 고류지는 스이코 일왕 11년(603

년)에 건립된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호류지(법륭사), 시텐노지(사천왕사)와

함께 쇼도쿠태자가 건립한 일본7대 사찰중 하나이다. 쇼토쿠 태자에게 당대 실력자

였던 신라계 하타씨가 불상을 받아 고류지의 전신인 호코지를 창건해 불상을 모셨

다고 하며, 하타씨는 캄무 일왕을 도와 나라에서 교토로 수도를 옮겼고 교토는 중

국 장안을 모방해지은 계획도시였다고 한다. 이 고류지에는 일본국보1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있었다. 불상 재료가 일본엔 없는 적송이라 밝혀져 신라제작설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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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호교수님(고류지 경내) 니조성 카라몬(당문)

니조성 내 니노마루 정원 오사카 도톤보리

중이 쏠리고 있다고 하였다. 경계가 매우 삼엄하여 교수님께서 마이크도 없이 설명

을 하셨고 사찰 내부와 정면 촬영은 당연 금지여서, 조용히 관람하던 중 중앙에 위

치한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직접 보니 정말 우리나라 금동미륵보살과 쏙 빼닮았고

부처의 미소가 참 온화해보였다.

두 번째 탐방지는 교토시내 중심에 위치한 니조성이었다. 성전역이 국가사적이면

서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었다. 에도막부를 연 도쿠가와이에야스가

1603년 완공(니노마루)했고 이후 손자 이에미츠가 현재규모로 성을 확장(혼마루)햇

다고 한다. 이곳 역시 성답게 해자가 있고, 내부 벽면과 창에 금으로 화려하게 그림

을 그리고 창살도 새긴 무늬들도 매우 섬세하고 화려했다. 그리고 겁쟁이 이에야스

가 외부침입자가 들어왔을때 바로 알도록 만든 삐약소리가 나는 마룻바닥장치가 참

특징적이다.(역시 니노마루어전은 촬영금지) 또한 아름답게 조경된 일본의 정원(큰

터, 조망, 물, 나무, 이끼, 인공미)도 인상적이었다.

이제 탐방을 마치고 오사카로 돌아가면 기다리던 시내 자유탐방시간이 있었다. 도

톤보리를 중심으로 16시~21시까지 자유시간이었다. 룸메이트와 난바역부터 신사이

바시역까지 도톤보리일대를 신나게 돌아다니고 유명한 금륭라멘, 타코야끼도 먹어

가며 직원과 가족들에게 줄 선물 쇼핑도 하였고 일본의 지하철체험도 해보았다. 이

렇게 일본에서의 아쉬운 마지막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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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섯째날-12월 18일(금) 오사카

마지막날 첫 번째 탐방지는 한반도의 고대 절 건축양식을 보이는 오사카 시텐노지

(사천왕사)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1400년전 스이코 일왕 원년(593년)에 건립되었고

남북으로 중문, 오층탑, 금당, 강당을 일렬로 배치하고 이를 회랑이 둘러싸는 형식

인 가람배치양식으로 일본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양식 중 하나이고 원류는 백제사

찰이라고 하였다. 특이한 점은 11월에 여기서 열리는 왓소축제이다. 백제에서부터

조선통신사까지 한반도에서 온 손님들을 맞이하던 환영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왔소?' '왔소. 또 왔소.' 매년 11월 첫째 일요일을 택해 일본에 왔던 왕인 박

사 등 손님을 맞이하는 가장행렬이 벌어지는데 옛날 복식을 한 채 행렬을 이어가며

외치는 ‘왓소! 왓소!’ 소리가 그대로 축제의 명칭이 됐다. 그리고 2020년에 있을 행

사를 위해 5층탑을 지금부터 분리하여 수리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 탐방지는 오사카성(대판성)이었다.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자신의 거처로 지

은 오사카성, 도요토미의 영화와 몰락을 상징하는 성이기도 한다. 천한 신분이 컴플

렉스가 되어 규모와 화려함이 대단하였다. 심지어 천수각 화장실까지 순금으로 도

배를 했다고 한다. 오다노부나가 사후 정치의 주도권을 잡고 1583년 혼간지 절터에

오사카성을 쌓기 시작하여 천하통일을 이룬 도요토미의 상징이 된 오사카성, 그러

나 도요토미가 사후 1615년 오사카 여름전투에서 오사카성은 낙성, 토요토미 가문

은 멸망하고 도요토미 가문은 멸망하게 된다. 폐허가 된 오사카성을 도쿠가와히데

타다가 10년에 걸쳐 재축하고 1665년 소실된 천수각도 이후 재건되었다. 오사카는

돌산이 없었다는데, 영주들의 충성심으로 어마어마하게 큰 돌들로 석축을 만들기까

지 백성들은 얼마나 고됐을지 그 고통이 거대한 석벽들을 통해 전해지는 것 같다.

마지막 탐방지는 70년 전통의 백두학원 건국 유,초,중,고등학교였다. 우리8호차는

늦게 도착해 학생들의 사물놀이 공연을 못봤는데 다른 선생님들 말씀에 의하면 눈

물이 나올만큼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하긴 나도 강당 무대 왼편에 걸린

애국가 동판만 봐도 가슴한켠이 울컥지기 하였으니... 이광영 교장선생님 말씀 이후

에 이어진 중학교, 초등학교 교실 탐방에서 본 학생들은 참 예의바르고 밝고 활기

찼다. 재일동포들의 지원과 협력으로 세워진 이 학교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들

이 한데 어우러져 우리말과 문화를 배우고 세계화 교육을 받고 있다니 참으로 하나

된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이제 이 모든 탐방을 마치며 정들었던 선생님들과 아쉬움의 마지막 인사를 강당에

서 마치고 서운한 마음을 달래며 간사이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출국수

속하고 면세점에서 유명한 로이스초코렛도 사고 아시아나 비행기에 탑승. 영화 한

편 보는데 어느새 인천공항 도착이다. 그만큼 가까운 나라인 것이다.

5박6일 길고도 짧은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연수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동과 여

러 생각들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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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텐노지 금당(왼쪽 5층탑) 오사카성 천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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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 그 이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염려했던 것보다 가정에도 학교에도 별 다른 일 없이 다

들 잘 지내고 있어 안심이었고, 난 풀어야할 보따리가 많았다. ^^

21일 월요일 아침, 9일 만에 만나는 우리 5학년1반 아이들. 마침 사회시간인데 임

진왜란을 배울 차시였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와 일본의 상황과 임진왜란에 대

해 연수 때 직접 두발로 걷고 두 눈으로 보았던 나고야성터와 오사카성, 니조성, 조

선통신사까지 관련시켜 사진자료와 함께 설명해주니, 아이들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이어 창체시간엔 우리나라와 비교해 일본의 사회 문화에 대해 설명해주니 역시 귀

기울여 잘 듣는다. 마음 한 켠이 뿌듯했다.

한국사 공부를 좀 더 하여 2016년 1월에 있을 한국사검정시험에도 도전해 볼 것이

며, 그동안 경복궁, 남한산성, 수원화성, 고창읍성밖에 가보지 못했는데 우리 궁궐과

성에 대해서도 더 알고싶어 겨울방학 중 수강할 원격 연수도 신청해놓았다.

역사탐방연수는 국내외를 통틀어 처음이었는데,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음을 자부

할 수 있었다. 지역은 다르나 학교이야기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선생님들과의 대

화 중 학교이야기, 고민 나누기 등의 시간을 통해 동료애를 느낄 수 있었으며, 가깝

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일본과의 거리감을 좁히게 되었고, 나라와 나라사이에 문물

교류와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뛰어

난 기술들이 참으로 자랑스러웠고 우리 문화유산을 소중히 지키는 것 또한 매우 중

요함을 알게 되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