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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부르디외 아비투스(habitus) 문화자본 (champ) 재생산 상징폭력 구별 짓기 비판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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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부르디외

    아비투스(habitus)

    문화자본

    장(champ)

    재생산

    상징폭력

    구별 짓기

    비판과 평가

  • 부르디외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회학자로 콜레쥬 드 프랑스의 교수를 지냈다.

    프랑스 지방도시의 유대인 가정에 태어난 후 에콜 노말에서 교육을 받았다.

    현대 사회의 문화와 교육에 관한 많은 연구를 하였다. 특히 문화가 사회계층에 따라 다른 내용을 재생산하고 있고 ‘문화자본’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 저서로 (1974), (1979) 등이 있다.

  • 아비투스

    부르디에는 대상, 가치,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 또는 취향을 표현하는 행위의 체계로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습관’(habitude)을 에토스(Ethos)와 헥시스(Hexis) 2가지 차원으로 구분했다. 에토스는 반복되는 행동에서 비롯되는 기계적인 행위를 가리킨다. 헥시스는 도덕적 성향과 미덕(virtue)을 가리킨다. 부르디에의 에토스는 헥시스에 가깝다.

    인간의 일상생활은 단순하게 경제적 이해관계 또는 이성적 요소로 환원될 수 없으며, 개인이 과거에 가졌던 기억, 사회적 관습, 감정과 같은 다양한 요인을 모두 고려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 자본주의 아비투스

    부르디외는 (Algerie 60, 1960)에서 자본주의의 경제가 알제리 사회에 이식되었지만, 알제리 사람들은 과거의 물물교환 경제에서 익숙했던 습관, 기억, 전통에 따라 행동하는데, 이런 관행이 변하는 과정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행동은 엄격한 합리성과 계산을 통해 이루어지기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습득한 과거의 기억, 관습, 사회적 전통의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주장은 당대의 주류 학문인 실존주의와 구조주의의 사고에 도전하였다. 미국에서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신고전파 경제학)와 프랑스에서는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알튀세)가 커다란 영향을 가진 당대의 사회과학에 대한 도전처럼 보였다.

    아비투스 개념을 통해 행위자의 주체적 차원을 설명하며 실존주의와 구조주의의 변증법적 통합을 제시한다.

  • 학문과 정치

    부르디외는 알제리에서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새로운 방법론을 주장했다.

    당시 프랑스 지식인 사회와 학계를 지배했던 추상적, 이론적 경향을 벗어나 더욱 실증적 연구를 수행했다. 지식인은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문제에 천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철학보다 사회학으로 이동하였다.

    학문의 목표는 단순히 진리의 추구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모순을 폭로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의 무기를 만드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맑스와 알튀세의 지적 영향을 받았으며, 현실참여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공산당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 상속자

    부르디외는(1964)에서 프랑스 사회의 계급적 위계질서가 철폐되지 않고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기본적인 원인이 바로 교육제도에 있다고 주장한다.

    1968년 5월 혁명 당시 학생운동 세력은 소르본(Sorbonne)을 비롯한 상층부 대학의 서열제도를 혁파하고 모든 대학을 평등한 공립학교제도로 바꾸고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새로운 교육제도를 만들었다.

  • 재생산

    부르디외는

  • 운명의 신

    “그대들은 새로운 생애를 시작하지만 죽을 운명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운명의 신이 너희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운명의 신을 선택한 것이다. 첫 번째로 제비를 뽑은 사람은 필연성으로 얽매인 삶을 맨 처음 선택하도록 운명 지어질 것이다.... 선택한 자가 책임을 져야지, 신을 탓해서는 안 된다.”- 플라톤, <국가>, 부르디외, 에서 재인용.

  • 상징폭력

    상징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은 모두 자신의 힘의 토대인 권력관계를 은폐한 채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다시 정당성을 부여하는 권력이다. 이 권력은 이를 통해서 권력관계에 자신의 고유한 힘인 상징권력을 추가한다 (부르디외, , p. 20).

    교육행위는 자의적 권력을 통해서 문화적 자의성을 주입하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상징폭력이다 (p. 21).

    사회구성체를 형성하는 집단이나 계급들 사이에 권력관계가 존재하는데, 이 관계는 자의적 권력의 토대 기능을 수행하며 교육 영역에 독자적 의사소통 관계를 확립할 수 있는 조건이다. 즉 권력관계는 자의적 주입 양식 (교육 양식)에 따라 문화적 자의성을 제공하고 주입할 수 있는 조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육 행위는 상당히 객관적인 내용을 가진 상징폭력이다 (p. 21).

  • 문화자본

    부르디외는 문화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계급적 불평등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을 사용한다.

    경제활동에서 자본의 소유, 분배, 유통 과정에 따라 계급이 구분되는 것처럼 문화자본의 소유, 분배, 교환 관계가 계급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고전극, 전위예술, 문학, 재즈에 대한 교육은 계층의 문화자본에 따라 학생의 교육 효과가 달라진다.

    문화자본은 문화적 불평등을 통한 계급간 구조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데 핵심적인 요인이 된다. 문화자본의 논리에 따른 계급 불평등의 재생산은 경제적 관계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상대적 자율성을 가진다.

  • 선별과 배제

    특권계급은 선별권을 교육제도에 위임하여 세대간 권력 세습 기능을 완벽하게 중립적 권위에 양도하며, 이에 따라 권력 세습의 자의적 특권을 포기한다.

    그러나 이 제도의 형식상 완벽한 판정은 지배계급의 사회적 이익을 위해서 이 계급의 기술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므로 항상 객관적으로 지배계급에 봉사한다.

    학교는 이런 판정을 통해서 기존 질서를 전보다 훌륭하게, 그것도 어쨌든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창하는 사회에서 인지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재생산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학교가 자신의 수행 기능을 전보다 훌륭하게 은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동 가능성은 계급관계 구조의 재생산과 양립불가능하기는커녕 이 구조를 보전하는 기능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부르디외, , p. 203)

  • 문화자본의 자율성

    부르디외는 1850년대 플로베르의 소설이 부르주아 예술 규범을 비판하고 새로운 급진적 주장, 즉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하고 영향을 행사하게 한 것은 바로 플로베르가 소유한 문화자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Bourdieu, The Love of Art, 1996).

    문화자본을 결여한 집단과 개인은 부르주아의 심미적 문화를 지배하는 원리에 대해 효과적으로 도전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 부르디외는 1966년 발표한 논문에서 지적 작품의 창조성은 작가 개인의 순수한 기획이 아니라 작가가 속한 사회적 요구와 제약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과 맺는 관계는 “사회적 관계의 체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창작자는 “지적 장(champ)의 구조 내에서 창작자의 위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창조적 지식이나 예술작품들은 ‘장’ 안에 있는 행위자들의 상대적 위치와 ‘장’을 지배하는 구조적 규칙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장은 투쟁의 장소이고, 가능성의 공간이다. 장은 많은 잠재적 결과에 열려있는 곳이다.

    지적 장

  • 장(champ)

    장 개념은 경제적, 문화적, 상징적 자본의 분배와 관련하여 정의된 상이한 위치들 사이의 객관적 관계들의 네트워크를 가리킨다.

    구조주의의 ‘체계’ 개념은 폐쇄적이며, 대중적 의사소통이 거의 없는데 반해, 부르디외는 ‘장’을 통해 “문화적으로 매개된 행위”를 설명하며, 장과 행위자가 역사적 산물이라고 주장한다(Swingewood, 1998: 163).

    장 개념은 “세력관계의 장소로서…그리고 그것을 변형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투쟁의 장소로서, 그리고 그리하여 끊임 없는 변화의 장소로서, 성찰적 행위자와 구체적 행위 방식”을 포함한다.

  • 중간계급의 예술

    부르디외는 , 등에서 박물관이나 그림 전시회에 가는 중간계급의 문화적, 예술적 취향이 자신들의 사회계급을 유지시킨다고 분석했다.

    또한 상이한 취향에 따른 행위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계급적 정체성을 인정하게 만드는 사회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고 보았다.

    영화관과 전위예술 사이의 선택과 취향의 차이는 개인적, 우연적 결과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는 사회계급의 위치에 따라서 익숙해지고 강요된 것이다.

  • 예술의 규칙

    부르디외는 “상징 재화의 시장” 논문에서 문화적 작품의 생산 과정을 분석한다. 이는 그의 저서

  • 호모 아카데믹스

    부르디외는 (Homo Academicus, 1984)에서 학문의 세계를 분석한 지식사회학의 연구를 제시했다.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논쟁이 표면적으로는 순수한 학문적 토론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학자들의 파벌간 이해관계를 둘러싼 비학문적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

    한 시대의 학문의 ‘장’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는 논쟁은 사실상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 하이데거 연구

    부르디외는 (L'ontologie politique de Martin Heidegger, 1988)에서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지식사회학적 연구를 발표했다.

    하이데거는 훗설이 지배하는 학문적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주장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하이데거의 이 난해한 이유는 이 글이 학문적 필요가 아니라 정치적인 요인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에 패배한 염세적인 독일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독일의 재건을 바라는 민족주의적 반동세력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하이데거의 나치당 가입도 결국 학자로서의 신념보다는 성장 과정과 훈련 받은 교육 과정이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주는데 결정적이었다.

  • 구별짓기

    1979년 부르디외는 (La distinction)를 발표하면서 프랑스 사회에 대한 문화분석을 통해 계급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부르디외는 프랑스가 대혁명을 거친 후 2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귀족적 사회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총체적인 비판을 제시한다.

    그는 사회학이 일상생활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하며 구체적 문화 분석을 제시했다.

  • 교육수준, 사회계급, 취향

    부르디외는에서 교육수준과 사회계급에 상응하는 3개의 취향을 구분했다.

    ‘정통적 취향’은 음악에서 ‘피아노 평균율’, ‘푸가의 기법’, ‘왼손을 위한 협주곡’, 회화에서는 브뤼겔, 고야의 작품으로 대변된다.

    ‘중간층 취향’은 ‘랩소디 인 블루’, ‘헝가리 광시곡’, 르느와르의 그림이 포함된다.

    ‘대중적 취향’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라트라비아타’처럼 널리 통속화되었다는 이유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통속적 샹송처럼 예술적 야심과 욕망을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을 포함한다. 이러한 민중취향은 학력자본과 반비례한다(부르디외, , 43-45).

  • 상징 자본

    부르디외는 프랑스 노동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기반과 다르게 투표하는 행동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소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노동계급의 정치적 투표권의 행사가 왜곡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맑스의 ‘허위의식’과 그람시의 ‘헤게모니’의 이론을 활용하여 실증적인 문화 분석을 시도한다.

    개인의 의사결정과 정치적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물질적 조건이 가장 중요한 변수이지만, ‘상징자본’(symbolic capital)과 물적 자본의 비율이 어떻게 배분되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정치적 가치 판단이 경제적 변수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 문화권력과 계급 불평등

    부르디외에 따르면, 상류층의 아비투스(habitus)와 빈곤층의 아비투스는 다르다. 문화적 취향, 기호, 선호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다. 특히 높은 수준의 문화를 즐기는 능력은 오랜 훈련을 통해 길러진다.

    현대사회의 불평등 상태는 문화적 생활양식을 통해 개인의 무의식과 습관을 지배하며, 현대사회의 권력관계와 ‘상징폭력’은 표면적으로 가시화되지 않는다.

    부르디외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문화권력의 그물망에서 평등의 실체를 망각하고 계급적 불평등에 익숙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 사회학주의

    부르디외의는 민중계급의 비판의식이나 지식인들의 저항정신 자체가 권력의 효과와 상징 폭력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하버마스와 기든스와 달리 부르디외의 사회학은 사회의 윤리와 이성적 사회를 위한 실천적 문제 질문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부르디외는 ‘사회학주의’(sociologisme)의 접근법을 제시했으며, 학문적 실천이 사회문제의 현장을 떠나지 않으며, 항상 현실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전문적 지식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특히 사회학자는 구체적인 사실에 대하여 분석하고 설명할 뿐이다. 그는 보편적인 진리에 대하여 회의적이었다.

  • 성찰적 사회학

    “사회학은 타학문에 비해 ‘성찰적’이란 특징을 갖기에 사회제도들에 내제한 갈등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고안하는 데 있어 여타 학문들보다 더 강력한 모델과 이론을 생산해 왔다”.

    “사회학은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삼으며, 집합적으로 억압된 ‘사회적 무의식’을 드러낸다”

    “사회학은 그들의 역사적 기원과 오류의 가능성, 그리고 잠정적인 타당성의 원칙을 환기시킨다”

    “사회학은 자신들의 제국을 현실화시키고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에 점점 더 의존하는 권력들에게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비판적 대항-권력의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사회학은 국가권력을 포함한 모든 권력에 대해 자신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 1993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금메달 수상 연설

  • 언론과 민주주의

    부르디외는 , 에서 민주사회에서 여론과 언론의 유착 관계를 비판한다.

    맑스가 비판했던 자본주의 경제의 상품 물신주의가 현대사회에서는 정치적 영역에서 출현했다. 현대 정치는 민주적 형식을 갖고 있지만, 사실상 권력, 돈, 여론조작에 의해서 끊임없이 왜곡되고 있다.

    이러한 언론 비판은 공적영역이 민주정치에 기여할 수 있다는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이론과 대조적이다.

  • 신자유주의 비판

    부르디외는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프랑스 노동자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98년에는 에 “좌파 중의 좌파를 위하여”라는 논설을 게재하여 조스팽의 ‘제3의 길’은 좌파의 문제의식을 상실한 시대적 병폐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부르디외는 (Le contre-feux, 1998)에서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경제세력의 세계화에 반대하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의 독재에 맞선 사회운동을 지지했다. 2000년 12월에 있었던 노동자 파업과 지식인들의 반정부 투쟁의 시기에 프랑스 지식인들의 사이에 형성된 좌우의 이념 대립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했다.

  • 평가: 방법론

    부르디외의 아비투스의 개념은 사회학의 구조와 행위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개념과 이론을 제시했다.

    합리적 선택이론과 구조주의를 비판하며 미시-거시 연계를 시도하는 방법론을 추구했다.

    부르디외는 전통적 양적 분석인 회귀분석 대신 ‘대응분석’(correspondence analysis), 특히 다변량 분석을 시도했다.

  • 평가: 인식론

    부르디외의 사회학은 계급행동의 작동방식과 사회적 영향을 분석한다. 사회경제 구조의 주체의 위치(거시적 방법)와 구조적 효과가 개인의 의식에 내면화하는 방식(미시적 방법)을 설명한다.

    ‘장’ 이론은 개인 행동의 합리성이 사회적 구조와 연계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사회적 장의 효과는 개인의 위치에 따라 주체 형성 과정이 달라질 수 있으며, 개인에게 강제적 과정으로 작용한다. 장의 논리에서 벗어난 개인의 행동은 제약된다.

    부르디외의 장과 아비투스 개념은 객관적 차원과 주관적 차원을 연결하며 구조의 역사적 발생에 대한 관심, 사회적 행위와 실천의 집합적 토대에 관한 관심을 실천 자체의 개방적 성격과 연결시킨다.

    그러나 장과 아비투스에서 성찰적 사회학은 사라지고 명백하게 결정론적 설명의 한계를 가진다는 비판도 제기된다(Martin Jay, 1993)

  • 맑스와 부르디외

    마르크스의 소외는 부르주아의 경제적 착취에 관심에 가진 반면, 부르디외의 상징적 폭력은 부르주아의 문화적 지배를 강조한다. 이는 루카치, 그람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문화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심과 유사하다.

    마르크스는 사회혁명을 생산관계의 변화라고 보지만, 부르디외의 관점에서는 문화적 취향의 변화가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부르디외는 상징 폭력의 지배 효과를 내면화하는 피지배자의 인정(reconnaissance) 메커니즘을 강조한다. 반면에 외부 구조의 효과가 개인의 의식 안으로 내면화하는 주체 형성 과정에 대한 미시적 설명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 미래의 전망

    부르디외의 이론에서 구조의 효과에 저항하는 개인을 찾아보기 힘들며, 개인의 이성적 능력을 통한 사회 변동의 전망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나 부르디외는 사회학자의 임무는 현실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지만 미래의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평가

    부르디외는 “현재 푸코, 바르트, 라캉과 함께 최고의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는 국제사회학회에서 20세기 사회학의 최고 10대 저서 중 하나로 평가를 받았다.

    그는 에밀 졸라와 장폴 사르트르의 ‘참여’(engagement)하는 지식인의 전통을 계승한 지식인을 평가를 받는다.

    2001년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의 제목은 사회학이 어떻게 현실에 참여하는지 보여준다. 사회학은 사회구조의 비밀을 폭로하면서 현실에 참여하는 전투 행위이다.